Originally published October 1, 1920
김남주 옮김
정말 재미있었다! 후기의 첫 마디가 이거라니 식상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정말 최고의 흡입력을 가진 추리 소설이었다. 마지막으로 읽었던 애거서 크리스티 소설이 오리엔트 특급열차였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애거서 크리스티 스타일의 뒤통수 치기에 제대로 당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정교하게 짜여진 소설이다. 가장 초반에 등장하는 문장부터 무엇하나 허투로 쓰인게 없다. 모든게 나중에 톱니바퀴처럼 물려 해명되는 카타르시스가 최고였다.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
헤이스팅스: 서술자 '나'
푸아로
에밀리 잉글소프 부인: 존, 로렌스의 양어머니, 앨프리드와 지난달 결혼한 노부인, 스타일스 저택의 주인
존 캐번디시: 첫째, 변호사, 현재 아내 메리와 함께 스타일스 저택에 거주중
로렌스 캐번디시: 둘째, 의사를 하다 그만둠, 스타일스 저택에 거주중
신시아 머독: 잉글소프 부인의 학창친구의 딸. 스타일스 저택에 얹혀살며 근처 병원에서 일함
에벌린 하워드: 잉글소프 부인의 친구
바워스타인 박사: 얼마 전 나타난 의사
메리 캐번디시: 존 캐번디시의 아내
앨프리드 잉글소프: 에밀리 잉글소프의 지난달 결혼한 남편
서술자 나 가 7월 5일 어린시절 친구였던 존 때문에 저택에 잠시 있게되고, 사건은 7월 16~17 사이 발생한다. 내가 도착했을때 친구 에벌린과 잉글소프 부인은 싸웠고 에벌린은 저택을 떠나고, 존을 비롯한 많은 인물들이 나와 잉글소프의 스무살 어린 정체가 불분명한 남자 앨프리드를 돈을 노리는 방탕한 사람이라고 탐탁치 않게 여기는 대화를 나눈다. 새벽 5시, 멀쩡하던 잉글소프가 발작을 일으키는 소리에 잠에서 깬 이들이 부인의 방으로 달려가지만 그녀는 발작하다 죽고만다! 바워스타인 박사와 부인의 주치의는 이를 독약이라고 판정하면서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게되는데....
각 인물들의 동기와 알리바이, 의심할점은 이렇다.
앨프리드 잉글소프: 부인의 유언장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상속자. 어디서 왔는지 불분명하며 저택의 많은 이들의 미움을 받고있다. 태도가 의뭉스러운 남자. 사건 전날 저녁 다른 지역에 가서 다음날 아침에 돌아왔다. 사건 전날 오후 4시경 잉글소프 부인이 어떤 남자와 말다툼을 하는 소리를 하인이 들었는데 앨프리드라고 추정된다.
존 캐번디시: 친아버지가 유산을 모두 재혼한 양어머니 잉글소프 부인에게 물려주어 경제적 자립이 힘든 상태. 그의 방에서 스트라크닌 독약병이 발견되었다.
바워스타인 박사: 갑자기 메리 캐번디시와 친해졌다. 잉글소프 부인이 죽은 밤 뒤늦게 올라왔다.
신시아 머독: 자신의 저택에서 위치를 불안해한다. 병원에서 일해 독약에 해박하다.
메리 캐번디시: 그 주 잉글소프 부인과 언쟁을 하다 내가 들어오니 멈추었다. 사건 발견 당시 잠든 신시아를 깨우고 있었다. 존과의 결혼생활이 행복하지만은 않아보인다.
로렌스 캐번디시: 그날 새벽 현장에서 벽장 쪽을 보더니 새하얘지는 이상반응을 보였다. 어머니가 자연사했다는 주장을 했지만 과학적으로 기각되었다. 초반 신시아와 존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나무 밑에서 쳐다보다 음울하게 사라진다.
하워드 양이 입을 열었다.
"나 잘 쓴 추리 소설을 좋아해요. 하지만 터무니없이 씌어진 것들이 많아요. 범인은 마지막 장에 가서야 밝혀지잖아요. 모두 놀라 말문이 막히죠. 하지만 진짜 범죄라면...... 금방 알 수 있어요."
"해결되지 않은 범죄들도 많답니다."
내가 반박했다.
"경찰이 안다는 게 아니에요. 그 범죄와 직접 연관되어 있는 사람들이 그렇다는 거지요. 가족이오. 그들을 속일 수는 없어요. 그들은 알게 되지요."
나는 비상한 흥미를 느끼며 물었다.
"그렇다면 만일 당신이 어떤 범죄, 예를 들어 살인 사건에 관련이 된다면 즉각 범인을 짚어 낼 수 있겠네요?"
"물론 그럴 수 있어요. 수많은 변호사들 앞에서 증명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분명히 범인을 알 수 있을 거예요. 그가 곁으로 다가오면 내 손가락 끝이 느낄 거예요."
p. 19
이 문장이 아이스브래이킹이자 본격적인 소설 진입구라 생각했는데... 사실 엄청나게 중요한 문장이었음을 몰랐다.
"...(중략) 사람은 결코 혼란을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되는 법이지. 이 사건은 아직 명확치 않네. 그렇지. 왜냐하면 지독하게 복잡하기 때문이라네. 그게 날 당혹스럽게 만든다네."
p.124
이 구절은 약국 직원에 의해 누군가 스트리크닌을 사갔다는 사실이 밝혀진 후 푸아로가 내게 하는 대사이다. 이때까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정말, 푸아로의 말대로 복잡하고 얽혀있는 사건이었다.
"진짜 증거는 대개 모호하고 불만족스러운 법이지. 조사해야 해. 선별해야 한다고. 하지만 여기에서는 모든 것이 명료하고 건조해. 그렇다네, 친구. 아주 영리하게 만들어진 걸세. 너무나도 영리한 나머지 제 꾀에 제가 넘어갈 정도라네."
p.152
"당신이 왜 앨프리드 잉글소프에게 그렇게 적대감을 갖고 있는지 말해 볼까요? 그것은 당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으려 애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본능을 억누르고 싶기 때문이지요. 본능은 당신에게 말해 주고 있지요. 다른 이름을......."
"아니에요, 아니에요, 아니라고요!"
하워드 양은 두 손을 거칠게 앞으로 뻗으며 소리쳤다.
(중략)
"하워드 양, 이러는 건 당신답지 않습니다."
푸아로가 심각하게 말했다. 그러자 그녀가 갑자기 두 손에서 얼굴을 떼더니 차분하게 말했다.
"그래요, 지금까지 말한 건 에벌린 하워드가 아니었어요!"
그녀는 오만하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지금 말하는 게 에벌린 하워드에요! 그리고 그녀는 정의의 편이에요! 어떠한 희생이 따르더라도 말이에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단호하게 방을 나갔다.
푸아로가 눈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쫓으며 말했다.
"저기 아주 소중한 우리 편이 가는군. 저 여자는 말일세, 헤이스팅스, 감성과 지성을 겸비하고 있다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본능이란 놀라운 거라네. 설명될 수도, 간파될 수도 없지."
p.187-188
이때 에벌린 하워드의 성격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서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아마도 내가 원하기 때문일 거예요. 자유로워지기를 말이에요!"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문득 광대한 공간, 처녀림,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땅을 떠올렸다. 그러자 메리 캐번디시 같은 성정을 지닌 사람에게 자유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한순간 나는 그녀의 본질을 본 것 같았다. 언덕의 수줍은 새만큼이다 문명에 길들여지지 않은, 자존심 강한 야생의 존재를. 그녀의 입에서 작은 외침이 터져 나왔다.
"당신은 몰라요. 당신은 모른다고요. 이 증오스러운 공간이 내게 얼마나 감옥 같았는지 말이에요!"
p.226
메리 캐번디시라는 인물은 처음부터 살짝 병풍 느낌인데 이때만큼은 확 살아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하다네. 왜냐하면 모든 것들 가운데 가장 진지한 것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일세."
"그게 뭡니까?"
"한 여자의 행복이라네, 몬 아미."
p.229-230
사실 푸아로가 처음부터 범인을 알고있었음에도 길게 돌아간 가장 큰 이유.... 정말 재미있었다. 푸아로가 서술자인 나에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도 주인공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얘가 범인인가? 아닌가 얜가? 하면서 고민하다가 통수를 수십번 맞고 감탄하며 마지막장을 넘겼다.
별개로 큰 스포는 아니지만 스포주의))
로렌스는 신시아가 범인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녀를 사랑하기에 증거를 묻으려고 했던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신시아의 방으로 통하는 빗장이 열려있는 것을 보고 창백해졌던 것도, 그리고 커피 잔을 부수고 자연사를 주장하고 등등... 미장셴으로 남을뻔 했는데 마지막에 설명해줘서 속시원했다.
그때 당시의 영국 저택들을 생각하며 읽었는데 큰 저택에 중앙을 오르는 계단, 그리고 좌 우 측량의 복도와 방들 이렇게.. 약간 신데렐라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복도식 저택을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아 재밌어. 조만간 또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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