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돈 후안 외> 티르소 데 몰리나 - 줄거리, 인상깊은 구절, 독후감

묵문 2024. 11. 7. 21:20

The Trickster of Seville and the Stone Guest (Spanish: El burlador de Sevilla y convidado de piedra)

Date premiered c. 1616–30

 

 

 

첫 번째 희곡 돈 후안.

세비야의 기사 돈 후안 테노리오, 아폴리에 지주로 있는 중 옥타비오 공작으로 모습을 속여 이사벨라 공작부인과 정을 통한다. 사실을 들킨 돈후안은 삼촌 돈 페드로의 도움으로 도망간다. 도망가는 길 난파를 당하고 타라고나 항구에서 순수한 여인 티스베아를 꼬신다. 이후 세비야로 가 친구 모타 후작을 만나는데 친구 모타 후작이 사랑하는 사창가의 여인 도냐 아냐를 가지려 하지만 실패하고 도냐 아냐의 아버지 돈 곤살로 데 우요야과 결투를 벌여 돈 곤살로를 죽인다.

그 다음 돈후안은 세비야 근처 마을 도스에르마나스에 결혼식을 목격하고 신부 아민타에게 그녀를 귀족부인으로 만들겠다 약속해서 속여 결혼한다. 그동안 그의 시종 카탈리논은 돈후안에게 충고하지만 듣지 않는다. 분노한 여자들은 세비야의 알폰소 왕에게 항의한다.

돈 후안은 돈 곤살로 무덤 앞 석상을 욕보이고 그를 식사에 초대하는데 정말 돈 곤살로의 유령이 나타난다. 식사가 끝나고 반대로 돈 곤살로가 돈 후안을 식사에 초대해서 묘지로 갔던 돈 후안은 돈 곤살로의 손에 이끌려 지옥으로 끌려간다.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을 좋아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미워하는 것. 기쁨이 넘칠 때 죽고 싶고 죽이려 들면 살고 싶은 거지.
내가 살고 있는 사랑의 제국에서 사람들은 고통 속에서 기쁨과 위안을 지옥 불 속에서 발견하지.
구원을 바라는 사람은 여기서 헤엄치면 되겠어. 바닷물 안에는 광기가 있어서 죽음도 썩지 않을 거야.
또 비참하게 도망자 신세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농락하며 사는 자는 반드시 농락당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근심의 시계인 질투여, 너는 매 순간 나를 고통에 빠뜨리고 모든 이들을 곤욕스럽게 하지.

짐짓 모르는 체 삶을 경멸하는 질투, 가진 자나 못 가진 자나 할 것 없이 나타나는 너, 이제 나를 그만 좀 괴롭히면 안 되겠니? 사랑은 한때 내게 생명을 주었지만 이제 사랑이 내게 남긴 것은 죽음뿐.
명예를 팔아 그녀를 안아 볼까? 촌놈들은 명예라면 환장하는 법이지.
그놈들은 명예란 걸 손에 들고 다니며 원할 때마다 꺼내 보는 물건인 줄 알지. 세상이 이렇듯 어지러우니 명예란 놈이 도시가 진저리 나서 시골로 도망친 것도 이상할 게 없지. 나라도 그러지 않겠는가?
인생은 짧고, 죽음은 화살처럼 오는 게 인생이죠. 그리고 그 짧음이 끝나면 기다리는 건 지옥뿐이랍니다.
돈 후안: 올 테면 오라지. 참 오래도록 나를 지켜봐 주시네!
아, 남자를 믿는 모든 여자들에게 저주 있기를!

모차르트: 다 폰데(Da Ponte), 오페라 돈 조반니(Don Giovanni) 로 제작되었고

푸시킨 '석상 방문객' 등 유럽 문학에 큰 영향을 미친 모티프 중 하나가 되었다.

 

두 번째 희곡 불신자로 징계 받은 자

이 희곡이 정말 재미있었다. 10년 수행을 하던 수도사가 신의 뜻에 의심을 품으니 악마의 꾐에 넘어가는 내용이다. 속세로 가면 만나는 남자가 천국에 가면 수도사도 천국에 갈 수 있을거라는 음성을 듣고 기대에 차 남자를 찾으나 남자는 엄청난 망나니였다.

나도 저 동굴에서 나와 반겨 하늘을 보니 아름다운 발가락이 달린 부른 베개 같더라. 높은 그 세계를 보기 위해 하늘에 생채기를 내려는 게 인간의 마음.
주님, 저는 알고 있습니다.
다가갈 수 없는 저 빛나는 왕관을 쓰고 당신께서 저를 바라보고 계시다는 것을. 태양 빛보다 아름다운 천사들이 그 왕관 주위를 맴돌고 있지요. 감당할 수 없는 이유로 제게 베푸시는 당신의 큰 은혜에 영광을 돌립니다.
세상의 천둥으로부터 저를 구하시고 심연의 문턱에서 저를 구하시니 저는 그런 은혜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보잘것없는 저를 이런 큰길로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그 길을 잃지 않고 따라가면 당신을 볼 수 있겠지요?
우둔함에 빠져 뱀 같은 자가 되었고, 내 생각조차 저주하며 뱀이 그 껍질로 약하게 보이듯이 나는 그 옷으로 선을 가장하고 있다.
내 불운한 운명을 거역할 수 없고, 결국 내 불행을 보았노라.
내가 저주받은 사람이며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는 뚜렷한 증거가 있으니, 차라리 저 옷을 나무에 걸고 그 옷으로 하여금 이렇게 말하게 하니, "파울로, 이 자리에 나를 걸었구나. 내가 감싸고 있는 그 영광이 네게는 가당치 않아." 하고 말하게 하련다.
내게 단검과 칼을 주고 그대가 이 십자가를 가지라.

구원과 최후의 심판은 하느님에 의해 예정된 것인가, 아니면 개인의 선한 행위에 의해 결정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