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장미의 이름-하> 움베르토 에코 독후감, 인상깊은 구절

묵문 2024. 11. 19. 22:10

장미의 이름-하

「세베리노 수도사님은 왜 찾아온 것일까요?」

「아드소, 이제 너도 네 머리를 좀 써서 생각해야 하지 않겠느냐?」 사부님 말씀에는 짜증기가 묻어 있었다.

452

여기가 매우 웃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화자가 중학생정도 되는 소년이라 윌리엄 수도사가 다 친절하게 설명해주기는 하는데..ㅋㅋㅋㅋㅋㅋㅋㅋ「」

책들은 종종 다른 책들에 대해 말하지. 간혹 무해한 책은 위험한 책에서 꽃을 피우는 씨앗과 같거나 그 반대라고. 독초 대궁이에 단 열매가 열리는 격이라고 할까. 알베르투스 마그누스의 책을 읽어도 토마스 아퀴나스가 뭐라고 했는지 알 수 있지 않느냐? 토마스 아퀴나스를 읽으면 아베로에스가 뭐라고 했는지도 알 수 있고........」

484

공감한다... 그래서 작가가 언급한 책이 궁금해 읽고 또 읽고 연쇄작용

알베르투스 마그누스:

스콜라철학을 집대성한 토마스 아퀴나스의 스승이자 도미니코수도회 수사로 독일의 신학자, 철학자, 자연과학자이다. ‘마그누스(Magnus)’는 이름이 아니라 ‘위대하다’라는 뜻의 존칭이며 그리스도교에 큰 기여를 한 공로로 교회박사(교회학자)로도 불린다. 이탈리아 파도바대학을 다니다 1223년 도미니코회에 입회하여 신학을 전공한 후 프라이부르크, 스트라스부르 등의 도미니코 수도원에서 강의를 했다. 1245년 유럽 학술의 중심지 파리대학의 초청으로 전 유럽에서 모여든 수재들을 가르쳤는데 그중 한 사람이 성 토마스였다. 1254년 독일 수도회 관구장으로 선출되었고, 1260년 레겐스부르크의 주교로 서임되었다. 이후 로마와 그리스 교회의 일치를 위해 애를 썼으며, 신플라톤주의적 사상에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가미하여 이성과 신앙의 영역을 구별하였다. 1280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성서와 신학 관련 저서들은 물론이고 설교, 윤리학, 연금술, 천문학, 광물학 등 다양한 학문을 연구한 글들을 남겼다. (yes24 작가소개)

서책이라는 것은 서책 자체의 내용도 다루고 있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서책끼리 대화를 주고받는다는 것을 나는 사부님 말씀을 듣고 나서야 깨달은 것이었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고 보니 문득 장서관이 몹시 마음에 걸렸다. 그렇다면 장서관이란, 수세기에 걸쳐 서책끼리의 음울한 속삭임이 계속되는 곳, 인간의 정신에 의해서는 정복되지 않는, 살아 있는 막강한 권력자, 만든자, 옮겨 쓴 자가 죽어도 고스란히 살아남을 무한한 비밀의 보고인 셈이었다.

484

서책 속의 일각수는 그 흔적과 같다. 흔적이 있으면 흔적을 남긴 존재도 분명히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

...

「(...) 관념은 만물의 기호요, 형상은 기호의 기호, 관념의 기호인 것이다.」

540

인간은 동성(同性)에 대해서도 상사병에 걸리는 것일까? 아니면 동성에 대한 감정은 짐승의 음욕에 불과한 것일까? 내가 그 여자와 함께 밤을 보냈던 것도 짐승의 음욕에 견주어질 만한 탐욕 때문이었던가? 아니어야 한다....... 그렇게 달콤한 사랑이 짐승의 음욕일 리 없다....... 아니다, 아드소여, 네가 틀린 것이다. 그날 밤의 춘사는 악마가 보낸 환상이다. 따라서 짐승의 음욕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553

사실 근데... 그냥 아드소가 혼자 사랑에 빠지고 혼자 온갖 생각 다하는 꼴이 당황스럽다. 흠....

성령의 일곱 가지 선문에 관한 글에서 부르봉 사람 스테판은, 성 도미니크가 팡조에서 이교도들을 상대로 설교를 마친 뒤 여자들에게, 곧 그들이 섬기던 이교 신의 정체를 알아볼 것이라고 말했답니다. 그러자 난데없이 대중들 속에서 크기가 개만 한, 무시무시한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났는데, 왕방울 같이 큰 눈으로는 불길을 뿜고, 시뻘건 혀는 배꼽까지 늘어져 있는 데다 짤막한 꼬리는 하늘로 치솟아 있더라지요.

559

묘사가 좋아서..

어쨌든 본래 목적에 맞게 수도원에서 두 수도회 사람들이 만나 이단에 대한 토론을 하는데, 그러다 갑자기.. 싸운다. 싸우는데 말이 너무 웃김...

소란의 와중에 프란체스코 수도회와 도미니크 수도회 수도사들은 서로 심한 욕지거리를 해댔는데, 마치 이교도 사라센인들과 기독교인들이 벌이는 싸움 같았다.

588

「베다니아에 가서 주무신 건 주님 사정인데, 그걸 우리가 어떻게 알며 왜 알아야 하느냐?」

「이런 등신아, 주님은, 예루살렘 여관의 숙박비가 없어서 베다니아로 가셨던 것이다.」

...

「네놈이야말로 그리스도를, 성직이나 팔아먹는 똥통 같은 교황청 성직자에 비교하는구나.」

「오냐, 그러냐? 교황이 네놈의 재산을 지켜 준답시고 송사를 몇 번이나 하더냐?」

「교회의 재산이지 그게 어디 우리 재산이냐? 우리는 그저 쓸 뿐이다.」

「그래, 쓰려고 으리으리한 교회를 짓고 금상을 앉혔더냐? 이 위선자, 회칠한 무덤, 상습범들 같으니! 온전한 삶의 원리가 자비에 있음이지 가난에 있음이 아니라는 걸 네놈들도 알텐데 그러는구나.」

「그건 네놈들의 괴수인 꿀돼지 토마스 아퀴나스의 말이렷다?」

「말조심 못하겠느냐? 이 깡패 같은 늙은이 같으니라고. 네가 꿀돼지라고 부른 그분이 신성 로마 교회의 성인인 줄 왜 모르느냐?」

...

「말조심 못하겠느냐? 이 돼지, 바빌론의 갈보, 매춘부의 사생아 같으니! 우베르티노는 그해에 황제와 같이 있지도 않았다. 우베르티노는 아비뇽에서 오르시니 추기경과 함께 있었고, 교황이 우베르티노를 아라곤으로 보낸 게 바로 그때인줄도 모르느냐?」

「알고말고....... 모를 턱이 있냐? 추기경 밥상머리에서는 청빈을 서약하고, 야반도주해 가지고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기름진 이 수도원 식객이 되어 있다는 것도 안다. 여보, 우베르티노, 당신이 거기에 없었는데 누가 꼬드겼기에 황제가 당신 글을 써먹었다지?」

「네 이놈, 황제가 내 글을 읽은 게 내 잘못이더냐? 너 같은 돌대가리의 글은 아무리 똑똑한 황제라도 못 읽을 게다.」

「내가 돌대가리라고? 하면 거위 타고 논 네놈들의 프란체스코는 그럼 유식하더냐?」

590-592

세 페이지에 걸친 만담.. 하나 하나 주옥같다.

모두가 하나같이, 내부 분열이 없는 교회의 미래를 나름대로 설계하고 축원했다. 이쪽에서 저쪽 교단의 교세를 찬양하면, 저쪽에서는 이쪽 교단의 절제와 청빈을 칭송했다. 그렇게 멱살잡이를 하던 수도자들이 졸지에 정의와 분별이라고 하는 미덕의 주인들이 된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많은 수도자들이 그렇게 열심히 성직과 신학적 미덕의 승리에 마음을 쏟는 현장을 본 적이 없었다.

597-598

사람들은 개념을 지칭하기 위해 각기 다른 명칭을 붙이지만 사실상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이해하는 것은 그 개념뿐이지 이름은 다르게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600

「이런 짐승 같은 게르만 놈! 이런 무 대가리 같으니라고! 이런 ignoramus(무식쟁이)! 아드소 너 이놈! 첫 장 넘길 줄만 알았지 나머지는 건성으로 넘겼구나!」

624

하.. 웃김,,,,

사람을 죽인다고해서 꼭 손수 쳐야 하나요? 부릴 줄만 알면 악마가 이 일을 대신해 주는 것입니다.

660

내가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것을 보신 사부님이 내 머리에 한 손을 얹으시고는 목덜미를 움켜쥐듯 눌렀다. 그 덕에 나는 다시 진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보았지? 고문을 당하거나 고문의 위협을 당하면 사람이란 제가 하지 않은 짓은 물론이고 알지 못하는 짓, 하려던 짓까지 했다고 하는 법이다. 레미지오는 지금 어떻게 하든지 죽기만을 소원한다. 고문을 당하느닌 차라리 죽고 싶은 것이다.」

662

상 권에서 나왔던 고문에 대한 이야기!

「모든 꿈이 그렇고 환상이 그렇듯이, 네 꿈 역시 또 다른 이치에 가까이 닿아 있다. 꿈이라고 하는 것은 비유, 혹은 상징으로 해독되어야 하는 것이야.」

「성서처럼 말씀이십니까?」

「꿈은 곧 성서이다. 그리고 성서의 많은 기록이 곧 꿈 이야기지.......」

737-738

「(...) 따라서 너는 내 손안에 있다. 그러니 내 명에 따라야 한다. 자, 영원히 네 입을 다물겠다고 서원하거라.......」

사부님이 나서지 않았더라면 나는 원장 앞에서, 영원히 입을 봉하겠다고 서원을 세웠을 터이고, 그랬더라면 독자 여러분은 나의 이 충실한 연대기를 읽을 수 없었을 것이다.

756

침묵의 맹세

희극이란 유명한 사람, 권력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비천하고 어리석으나 사악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겁니다. 희극의 주인공은 죽은 일이 없지요. 희극은 보통 사람의 모자라는 면이나 악덕을 왜곡시켜 보여 줌으로써 우스꽝스러운 효과를 연출하지요. 여기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웃음을, 교육적 가치가 있는, 선을 지향하는 힘으로 봅니다. 거짓이 아닌 것은 분명하나 실상이 아닌 것 또한 분명합니다. 그런데 희극이라고 하는 것은 실상이 아닌 것을 보여 주는데도 불구하고 기지 넘치는 수수께끼와 예기치 못하던 비유를 통해 실상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검증하게 하고, <아하, 실상은 이러한 것인데 나는 모르고 있었구나> 하고 감탄하게 만든다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실재보다 못한, 우리가 실재라고 믿던 것보다 열등한 인간과 세계를 그림으로써, 성인의 삶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보다, 서사시보다, 비극보다 더 열등한 것을 그림으로써 진리에 도달하는 하나의 방법을 제시한다는 것입니다.

792

실재 2 實在

  • 1.noun 실제로 존재함.
  • 2.noun 철학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인간의 의식으로부터 독립하여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물질세계.
  • 3.noun 철학 관념론에서, 사물의 본질적 존재.

웃는 순간, 범부에게는 죽음 같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때가 지나고 하느님의 뜻에 맞는 일상으로 되돌아오면 죽음의 두려움이 잊힌 계절처럼 되돌아옵니다. 하지만 이 서책에 따르면,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을 통해, 죽음을 쳐부술 수 있는 새로운 파괴적 겨냥이 가능해지게 됩니다. 우리 죄 많은 인생이 두려움에서, 일종의 선견지명이자 천상적 은혜 중에서도 가장 은혜로운 그 두려움이라는 것에서 해방되면, 그럼 우리는 뭐가 되겠습니까?

...

이 서책은 오히려 천박한 것을 받아들임으로써 사악한 식자로 하여금 악마적으로 뒤틀린 거만한 자들을 구하려 하고 있어요. 이것을 그대로 두면 이 서책이, 인간이 이 땅의 환락경만으로도 천국을 누릴 수 있다는 해괴한 사상을 고취시킬 우려가 있어요.

...

한데 저 철학자의 말이, 타락한 상상력이 빚어낸 아슬아슬한 농담을 합리화시키는 날, 그 아슬아슬한 농담이 진실로 믿어지는 날에는 어떻게 되겠어요? 중심의 개념이 무너지고 말아요. 그때가 되면 하느님 백성은 terra incognita(미지의 세계)의 심연에서 기어오른 무수한 괴물의 무리가 될 터이고, 그 미지의 세계가 기독교 제국의 심장부가 될 것이며 외눈박이 괴물 아리마스피가 베드로의 자리에 앉고, 이집트의 블렘미 족속이 수도원으로 들어오고, 장구머리 장구통 배의 난쟁이가 사서 노릇을 하게 될 것이외다!

797-798

우리는 그들을 파멸시킬 방법을 알기 때문에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오. 그대로 두면 그네들의 구렁텅이에서 생겨난 뜻은 제풀에 그 절정에서 무너지게 되어 있으니 그들을 자멸케 하는 방법도 우리는 알고 있어요. 아니, 하느님 섭리에 기록되어 있으니 그들의 존재는 우리에게 소중하오. 그들의 죄악이 우리의 미덕을 장려하고, 그들의 저주가 우리의 찬미를 자극하고, 그들의 불경이 우리의 신심을 빛나게 하고, 그들의 미숙한 참회가 우리 제물의 맛을 돋우기 때문이오. 이는 마치 모든 희망의 시작이자 종말인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려면 악마와 악마의 간계와 악마의 절망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 이치랍니다. 하나 때가 되어 희롱하는 재간이 범부는 물론 학자들에게까지 유포되고, 그것이 받아들여지고, 심지어 고귀하고 자유로운 것으로 보이기 시작할 때, <나는 그리스도가 이 땅에 현현한 것을 비웃었다>는 소리가 들려오게 될 때, 우리의 손은 독신과 싸울 무기를 잃게 됩니다.

800

「이 영감아, 악마는 바로 당신이야!」 사부님이 말했다.

호르헤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 것 같았다.

...

「그래! 잘 들어 둬. 당신은 속았어. 악마라고 하는 것은 물질로 되어 있는 권능이 아니야. 악마라고 하는 것은 영혼의 교만, 미소를 모르는 신앙, 의혹의 여지가 없다고 믿는 진리...... 이런 게 바로 악마야! 악마는 그가 가고 있는 곳을 알고 있고, 움직이면서 언젠가 그가 온 곳으로 되돌아가기 때문에 음험하지. 따라서 영감이 바로 악마야! 봐라, 영감은 악마답게 이렇게 어둠 속에서 살고 있지 않아! 영감이 나를 설득하려 했다면 그건 실패로 끝났어. 영감, 나는 당신이 싫어. 당신 같은 인간이 싫어.(...)」

801

「가짜 그리스도라고 하시면.......」

「호르헤 영감의 얼굴 말이다. 철학에 대한 증오로 일그러진 그의 얼굴에서 나는 처음으로 가짜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았다. 가짜 그리스도는, 그 사자(使者)가 그랬듯이 유대 족속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먼 이방 족속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잘 들어 두어라. 가짜 그리스도는 지나친 믿음에서 나올 수도 있고, 하느님이나 진리에 대한 지나친 사랑에서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성자 중에서 이단자가 나오고 선견자 중에서 신들린 무당이 나오듯이....... 아드소, 선지자를 두렵게 여겨라. 그리고 진리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자를 경계하여라.

...

인류를 사랑하는 사람의 할 일은,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를 비웃게 하고, 진리로 하여금 웃게 하는 것일 듯하구나. 진리에 대한 지나친 집착에서 우리 자신을 해방시키는 일......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좇아야 할 궁극적인 진리가 아니겠느냐?」

823

그러나 이 구상이 그에게 과분했기에 결국에는 일련의 인과 관계와 상호 작용하는 복합적 인과 관계, 다시 서로 모순되는 인과 관계, 계획과는 전혀 무관한 관계가 창출됐다. 내 지혜라는 것은 어디로 갔느냐? 나는 가상의 질서만 좇으며 죽자고 그것만 고집했다. 우주에 질서가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나...... 이것이 어리석은 것이다.」

..

우리가 상상하는 질서란 그물, 아니먄 사다리와 같은 것이다. 목적을 지닌 질서이지. 그러나 고기를 잡으면 그물을 버리고, 높은 데 이르면 사다리를 버려야 한다. 쓸모 있기는 했지만 그 자체에는 의미가 없음을 깨닫게 되니깐 말이다.

825

「그렇다면 사부님, 가능성에만 매달려서야 필연적인 것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하느님과, 태초의 혼돈 사이에 무엇이 다릅니까? 하느님의 절대적 전능성과 그 선택의 절대적 자유를 긍정하는 것은 곧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과 같지 않을는지요?」

826

사부님이 탄식했다. 「이곳은 너무 시끄럽구나. Non in commotione, no in commotione Dominus(이런 난장판에는, 이런 난장판에는, 주님이 계시지 않아).......」

826

stat rosa pristina nomine, nomina nuda tenemus(지난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

836

완결.

장미의 이름은 사람이 쓴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완벽한 고증에 그 시대 사람들의 사상을 잘 담고있다. 소설보다는 역사서에 가깝게 느껴질 정도이다.

개인적으로 어렸을때부터 여러 곳을 많이 옮겨다니면서 영원한 진리는 없다는 그런 생각을 했는데 여러모로 후반 윌리엄 수도사의 심정에 공감할 수 있었다. 나이들고 조금 더 생각이 많아지면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

+그리고...

요한 복음서 8:22

<그러면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그때 나는 하늘로부터 땅에 떨어진 별 하나를 보았습니다. 그 별은 끝없이 깊은 지옥 구덩이를 여는 열쇠를 받았습니다.......>

요한 묵시록 9:1

Lacrimosa dies illa

qua resurget ex favilla

iudicando homo resus:

huic ergo parce deus!

Pie Iesu domine

doa eis requiem.

(눈물이 홍수를 이루는 날

처형당할 자들이

잿더미에서 소생한다.

하느님, 저희를 용서하소서.

자비로우신 예수여

저들을 편케 하소서.)